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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성탄 자시미사가 끝난것은 자정이 훨씬 지난 시각이었다
마주치는 교우들은 덕담과 인사를 나누었고 성탄의 기쁨을 나누었다
요셉은 동기 아이들과 미사에 참석한 후 애덕원 식당에서 가벼운 저녁을 먹었다
ㅡ 경자야 , 넌 살 집 정했어 ? ㅡ
ㅡ 응 안나 언니 사는 집에 마침 방이 하나 비었대, 월세도 싸고 ㅡ
모처럼 요셉이 관심을 보이자 그녀의 얼굴은 금방 피어난 꽃처럼 활짝 피었다
ㅡ 그런데 너는 ? ㅡ
ㅡ 응 난 공장 기숙사에서 지내기로 했어 ,조용해서 공부하기도 좋아. 내년에 야간 대학이라도
가려면 거기가 좋을 것 같아 . 중요한건 돈 들어 갈일이 별로 없다는 것 하하하 ㅡ
ㅡ 그래 잘 됐다 , 난 걱정했어 ㅡ
ㅡ 계집애 , 무슨 내 걱정을 하냐 ? 나는 니가 걱정된다 ㅡ
ㅡ 에구 ~ 그렇게 걱정이 되셨어요 ? ㅡ
ㅡ 그럼 , 넌 내 누이 동생 같아. 오빠니까 걱정해 주는거지 .ㅡ
요셉의 말에 그녀는 마음은 푸근해지고 평화로와졌다
" 그래 내가 너의 동생이 되든 무엇이 되는 너와 함께 한다면 난 행복할 것 같아 " 그를 향한 마음은
언제나 간절했다. 그만큼 요셉은 그녀의 마음 전부를 차지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성숙하지는 않았지만 풋풋한 사랑이었기에 어떠한 시련이라도 견디고 사랑을 완성으로 만들고 싶은
것이 율리안나의 마음이었다
ㅡ 호호호 고마워 , 자 이거 선물이야 ㅡ
ㅡ 어 ! 난 준비도 못 했는데 ㅡ
ㅡ 오래비가 되서 누이동생 크리스마스 선물 하나 생각도 안했어 ? 못 됐다 ㅡ
선물을 뜯어 보라고 재촉하는 성화에 요셉은 선물 상자를 풀렀다
제법 값이 나가는 가죽 장갑이 들어 있었다
ㅡ 고마워 , 율리안나야 . 그런데 어쩌지 나는 미안해서 ㅡ
ㅡ 피 ~ 앞으로 나한테 잘 하면 용서해 줄께 ㅡ
ㅡ 그래 , 고마워 율리안나야 ㅡ
장갑을 끼고 있는 그의 얼굴은 이미 당당한 청년의 모습이었다
하얀 얼굴. 길게 드리워진 머릿카락 , 짙은 눈썹과 서글한 눈매, 듬직한 어깨, 당당한 키
뜨거운 심장이 뛰고 있을 그의 넓은 가슴에 안기고 싶은 마음이 불같이 일어 났다
ㅡ 정말 고마워 , 선물 고맙고 성탄 축하해
난 이제 우리 꼬맹이들 산타 할배 선물 주러 가야해 ㅡ
요셉은 식당 한쪽에 두었던 선물 보따리를 들고 일어섰다
그가 어렸을적 기다렸었던 산타클로스처럼 이제 요셉은 산타클로스가 되어
성탄의 선물을 기다리며 잠든 어린 동생들이 잠들어 있는 방으로 총총히 사라졌다
작은 도시지만 거리에는 성탄 분위기가 물씬거리고 사람들은 들떠 있었다
오늘은 설희가 오는 날이었다
어렵사리 알아낸 그녀의 서울 집주소로 보냈던 편지의 답장이 얼마전 도착 했었다
예비 고사가 끝나는대로 집에 내려 온다고 하였다
아침부터 들뜬 마음으로 지냈던 길었던 낮이 지나고 어둠이 내리는 거리로 나섰다
매콤하게 겨울 추위가 코를 찔렀다. 하지만 바람마저도 그에게는 상쾌 하였다
대합실 안은 기차 도착 시간이 한참 남아서인지 아직은 한적하였다
승강장 안쪽 화단엔 시들고 말라버린 꽃들이 겨울 바람에 흔들리며 있었다
설희를 만나면 무슨 말 부터 해야하나 ?
알 수 없는 미래의 두려움은 그녀를 생각하면 이겨나갈 수 있지만 , 나이가 들면서
겪게되는 자신의 신분이 그녀와의 사이에 걸림돌이 될 것 같은 불안감은 떨쳐 버릴 수가 없었다
이런 저런 상념 속에 빠져 있는 동안 대합실은 사람들로 차츰 채워져 가고 있었다
연착 끝에 기차가 도착을 했고 출구에는 사람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요셉은 멀찌기 떨어져서 그녀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하나 둘 씩 사람들이 빠져 나올때 까지 그는 출구에 눈을 떼지 않았으나 그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조바심에 다시 대합실 근처를 둘러 보아도 설희를 닮은 사람 조차도 눈에 띄지 않았다
" 분명 이 기차편으로 온다고 했는데 ....."
그는 역무원에게 가서 물었다
ㅡ 다음 도착 열차는 몇시지요 ?ㅡ
ㅡ 오늘 하행선 열차는 끝났어요 ㅡ
썰물이 빠진듯 대합실 안은 텅 비어 있었다
ㅡ엄마 정신 차려 보세요 ㅡ
진숙의 코에는 산소 마스크가 쓰워져 있었고 파리한 팔둑에는 링거와 약물들이 주사 바늘을
통해 깨어 나지 못하는 그녀의 몸 속으로 들어 가고 있었다
ㅡ 설희야 , 진정해라 ㅡ
ㅡ 아빠 , 엄마 좀 살려 주세요 ㅡ
한 양택은 침통한 표정으로 울부짖는 설희의 어깨를 안아 줄 뿐이었다
김 영준은 양택을 병실 밖으로 불러 내었다
ㅡ 일단 한 고비는 넘겼지만 나로서도 뭐라 장담하기가 힘들어 , 미안하네 ㅡ
ㅡ ..... ㅡ
한 양택은 대답대신 힘없이 고개만 끄덕이었다
무거운 침묵만이 두 사람 사이를 막고 있었다
설희는 진숙의 손을 잡고 뜨거운 눈물로 엄마가 다시 눈을 뜨기를 기도하고 있었다
" 하느님 , 저는 당신이 누군지 모릅니다 , 하지만 당신은 저의 어머니를 살려 주실 분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 아무것도 모르는 철없는 저의 간절한 기도,어미니에게 새생명을 주세요 "
지금 이 순간 그녀에게 단 하나의 바램은 오직 사랑하는 엄마가 눈을 떠서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 오는 것이었다
설희의 외할머니와 외삼촌이 침통한 얼굴로 그 모습을 지켜 보고 있었다
ㅡ 이제 중환자실로 옮겨야 합니다 ㅡ
인턴의사와 간호사 둘이 와서 이실 준비를 하였다
ㅡ 엄마 기운내 ㅡ
설희의 눈에는 끊임없이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2015, 9
일없이 분주했다
인창동, 아차 ( 完 )